1. 들어가며: 디파이 성장의 임계점
1-1. 과담보 리스크 모델의 한계
현재 탈중앙화 금융(DeFi) 생태계는 중개자 없는 투명한 금융 서비스로서 성장해 왔으나, 그 기저를 지탱하는 리스크 관리 모델은 여전히 과담보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익명성이 지배하는 온체인 환경에서 신뢰를 대체하기 위해 선택된 이 방식은 자산의 급격한 변동성으로부터 시스템을 보호하는 방어기제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동시에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파이 전반에 걸쳐 자산이 유휴화되는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단순 담보 가치에만 의존하는 모델을 넘어선 새로운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1-2. 기관 투자자가 요구하는 자본 효율성
2026년 현재, 실물 자산(RWA)의 토큰화와 함께 전통 금융기관들의 온체인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시장은 더욱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들에게 자산을 무조건적으로 과담보로 묶어두는 방식은 기회비용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들이 온체인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리스크 등급에 따라 담보인정비율(LTV)과 청산 임계치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정밀한 리스크 매개변수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디파이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담보의 양이 아닌, 검증된 데이터에 기반한 정량적 리스크 평가 표준을 구축해야 한다.
1-3. 신뢰의 공백과 디파이 리스크 등급 평가의 필요성
디파이가 더욱 성숙해지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온체인 상의 신뢰 공백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수십 년간 축적된 신용평가사의 데이터와 재무제표를 통해 리스크를 정량화하지만, 디파이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개별 금융 상품(볼트, 마켓)의 리스크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표준화된 지표가 전무하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며, 결국 기관들의 보수적인 접근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익명성이라는 블록체인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기관급의 엄격한 리스크 평가를 수행하고 이를 온체인 데이터로 치환할 수 있는 온체인 리스크 평가 표준의 정립은 성숙한 온체인 금융 생태계 조성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2. 전통 금융 신용 시스템의 견고함과 한계
2-1. 정교한 평가 모델과 시스템적 성숙도
전통 금융(TradFi)의 신용 시스템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수많은 경제 위기와 호황을 거치며 고도화된 시스템적 성숙도를 자랑한다. S&P, Moody’s, Fitch와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는 방대한 시계열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의 재무 건전성, 산업 내 지위, 거시 경제 변수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부도 확률(Probability of Default, PD)을 산출한다. 이러한 정교한 평가 모델은 자본 시장 내에서 리스크의 공통 언어 역할을 하며, 기관 투자자들이 수조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신뢰의 근간이 되었다. 즉, 전통 금융에서의 신용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 오랜 기간 검증된 정량적·정성적 분석 체계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2-2. 법적 장치와 실사 중심의 신뢰 구조
전통 금융의 신뢰는 강력한 법적 구속력과 실사 과정에 기반한다. 대출 계약이 체결되기 전, 금융 기관은 외부 감사인의 회계 보고서와 법률 검토를 통해 차입자의 실체를 엄격히 검증한다. 또한, 규제 당국이 설정한 자본 적정성 가이드라인과 공시 의무는 리스크 관리를 개인의 판단이 아닌 제도적 강제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이처럼 확인하고 검증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만약의 사태 발생 시 법적 구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보수적인 기관 투자자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심리적·물리적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2-3. 데이터 파편화와 물리적 제약의 한계
그러나 이러한 견고함 이면에는 현대 금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약점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신용 평가는 분기별 혹은 연간 단위의 보고서에 의존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생성된 시점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 시간 차(Time Lag)가 발생한다. 또한, 각 금융 기관과 국가별로 데이터가 고립되어 있는 데이터 사일로 현상은 리스크의 전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리적 실사에 수반되는 막대한 비용과 인간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평가 프로세스는, 초단위로 자본이 이동하는 온체인 환경에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효율성과 확장성 면에서 일부 한계점이 있다.
3. 크레도라: 디파이 리스크 등급의 표준 정립
3-1. 온체인 리스크 등급 평가
크레도라(Credora)는 파편화된 온체인 데이터와 오프체인 재무 정보를 결합하여 실시간 리스크 등급을 산출하는 리스크 평가 표준을 제시한다. 크레도라는 단순히 기술적인 도구를 넘어,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관 대출자와 리스크 관리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차입자 사이에서 신뢰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3-2. 전통 금융 방법론의 온체인 이식과 최적화
크레도라의 가장 강력한 차별점은 독자적인 DeFi Rating Scale과 Credora PD(부도확률) Curve에 있다. 크레도라는 S&P, Moody’s, Fitch 등 주요 신용평가사가 기록한 실제 채권 발행 건의 과거 부도 사례를 분석하여, 온체인 리스크를 전통 금융 자산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1990년부터 2023년까지의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통해 다양한 신용 주기를 반영했으며, 각 기관의 상이한 평가 체계를 단일 등급 체계로 표준화했다.
이를 통해 토큰, 대출 페어, 볼트 등 복잡한 디파이 상품들을 정량화된 등급으로 환산한다. 특히 볼트(Vault) 평가의 경우, 차입자의 상환 능력뿐만 아니라 볼트 관리자(Curator)의 리스크 관리 역량과 거버넌스 구조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및 시나리오 분석(Simulations & Scenario Analysis)과 같은 금융 공학 기법을 동원하여 잠재적인 중대한 손실 확률(PSL)을 추정함으로써, 시장 리스크와 별개로 존재하는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을 정밀하게 통제한다.
4. 기술로 진화시킨 위험 평가
4-1. 시의성: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다
전통 금융의 신용 평가는 분기별 혹은 연간 재무제표라는 사후적 데이터에 의존하므로, 실제 리스크 발생 시점과 평가 반영 시점 사이의 시간차(Time Lag)가 존재한다. 반면, 크레도라는 매일 금융 상품의 담보 상태, 유동성 및 청산 확률을 모니터링한다. 이는 리스크 관리를 과거의 기록 분석에서 현재 상태의 고빈도 추적으로 전환하는 혁신을 의미한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에서도 크레도라는 부도 확률(PD)과 중대한 손실 확률(PSL)을 정기적으로 재산출하며, 프로토콜은 이를 바탕으로 리스크 기반의 담보 매개변수(LTV 등)를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는 예상치 못한 시장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데이터 최신성을 확보하게 된다.
4-2. 의사결정의 표준: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을 위해
크레도라가 산출하는 리스크 등급과 지표는 특정 섹터에 국한되지 않고, 생태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객관적 지표 역할을 수행한다. 볼트 큐레이터는 제공되는 리스크 등급을 바탕으로 자산 포트폴리오의 위험 성향을 정밀하게 설계하며, 일반 사용자는 단순 수익률 너머의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자율적으로 비교·검토할 수 있는 정량적 근거를 갖게 된다. 또한, 애그리게이터는 정합성이 검증된 지표를 자본 배분의 최적화 경로를 설정하는 핵심 변수로 활용한다. 이처럼 리스크 등급이 공통의 언어로 기능함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각자의 전략에 맞춰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4-3. 확장성: 온·오프체인을 아우르다
기존 금융 시스템은 국가와 기관별로 데이터 장부가 파편화되어 있어, 전사적인 리스크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한 확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크레도라의 프레임워크는 온체인 유동성뿐만 아니라 오프체인 거래소(CEX)나 수탁 기관에 흩어진 자산 데이터까지 통합 분석할 수 있는 전방위적 확장성을 가진다. 특히 운용 및 차입 주체가 Read-only API 연동에 동의함으로써 해당 상품에 포함된 자산의 수탁 리스크와 예치금 투명성을 입증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익명성 보호와 리스크 가시성 사이의 균형을 맞췄다. 이러한 데이터 상호운용성은 파편화된 리스크를 연결하여 통합 리스크 뷰(Unified Risk View)를 제공하며, 디파이가 고립된 생태계를 넘어 글로벌 금융 자본이 자유롭게 흐르는 거대 인프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된다.
5. 레드스톤(RedStone): 리스크 등급을 전달하는 파이프라인
5-1. 모듈형 오라클 아키텍처를 통한 데이터 무결성 보호
리스크 평가의 신뢰성은 정교한 방법론만큼이나, 그 결과값이 변조 없이 온체인으로 전달되는 인프라의 견고함에 달려 있다. 레드스톤(RedStone)은 크레도라의 복잡한 오프체인 계산 결과와 디파이 프로토콜의 온체인 실행 사이에서 데이터 생성과 전송의 기술적 분리를 구현한다. 크레도라가 리스크 평가라는 콘텐츠'에 집중한다면, 레드스톤은 오라클로서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분리 구조는 리스크 평가 로직이 오라클 전송 과정의 잠재적 취약점에 간섭받지 않게 함으로써 시스템 전체의 보안성을 높이며, 기관급 금융 인프라에 걸맞은 안정성을 보장한다.
5-2. Pull 메커니즘을 통한 리스크 데이터의 유효성 검증
크레도라가 산출하는 리스크 등급은 시장 상황에 따라 동적으로 변동하는 지표이며, 이는 생태계 내 다양한 프로토콜의 핵심 운영 매개변수로 기능한다. 레드스톤은 기존 푸시(Push) 모델의 비효율을 해결한 풀(Pull) 방식의 데이터 피드 기술을 통해, 리스크 등급 데이터를 필요 시점에 즉각적으로 온체인에 연결한다. 이는 단순히 업데이트 빈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대출 실행이나 매개변수 조정이 일어나는 트랜잭션 시점에 크레도라의 가장 최신 등급을 호출(On-demand)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구조는 불필요한 가스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기관 투자자들에게 거래 직전 리스크 프로파일의 최신성과 유효성을 실시간으로 검증할수 있는 기술적 신뢰를 제공한다.
5-3. 엔드투엔드 검증: 데이터 출처의 투명성 확보
레드스톤 인프라의 핵심 가치는 전송되는 데이터의 암호학적 무결성에 있다. 레드스톤은 리스크 데이터를 단순 전달하는 매개체에 그치지 않고, 크레도라가 생성한 고유한 디지털 서명을 데이터 패킷에 포함하여 스마트 컨트랙트에 직결한다.
이를 통해 온체인의 디파이 프로토콜은 중간 매개체의 개입이나 데이터 변조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데이터의 출처와 진위 여부를 컨트랙트 레벨에서 직접 검증한다. 이러한 투명한 데이터 릴레이 방식은 신뢰 최소화(Trust-minimization)를 지향하는 블록체인의 철학을 실현하며, 보수적인 금융 기관이 디파이 리스크 등급을 실무적인 의사결정 지표로 채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술적 기반이 된다.
6. 맺으며: 성숙한 기관급 디파이 시장을 향하여
6-1. 온체인 리스크 기반 금융 시장으로의 글로벌 전환
금융의 역사는 결국 리스크 관리 역량의 확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 이제 디파이는 수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금융 시장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크레도라와 레드스톤이 구축한 리스크 평가 및 전송 인프라는 그동안 디파이의 고질적인 한계로 지적되었던 리스크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될 것이다. 담보 가치에만 매몰되었던 과거의 방식을 탈피하여, 리스크 등급 기반의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디파이 생태계가 조성됨에 따라 온체인 금융의 유동성은 폭발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이는 디파이가 제도권 금융 하에서 독자적인 효율성과 유동성을 갖춘 성숙한 금융 시스템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6-2. 인프라가 견인하는 RWA와 금융의 미래
실물 자산(RWA)의 토큰화가 금융의 다음 메가 트렌드로 부상함에 따라, 온체인과 오프체인의 리스크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표준화된 평가 지표는 필수 조건이 되었다. 레드스톤과 크레도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자산 운용사나 은행과 같은 대규모 기관 자본이 안심하고 온체인에 정착할 수 있는 기관급 리스크 관리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인프라가 데이터의 정합성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리스크를 통제하는 이 새로운 금융 환경에서, RWA는 단순한 자산의 파편화를 넘어 자본 효율성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리스크 관리 인프라의 완성은 우리가 꿈꾸던 투명하고 국경 없는 온체인 금융의 미래를 현실로 앞당기는 견고한 기술적 토대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Moody’s - Global Credit Conditions Outlook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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